*본 내용은 5월 29일 매일경제신문에 실린 이혁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의 기고문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온 세계가 신음하고 있다. 감염자와 사망자로 인한 고통 뿐 아니라 경제활동이 중단됨에 따라 세계경제가 1929년 대공황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은 다행히 완전한 봉쇄를 하지 않고도 위기를 훌륭하게 극복하고 있다. 재발의 위험성은 항상 잠재하지만, 서서히 일상으로의 복귀가 이루어지고 있어 많은 국가들이 희생자 최소화와 정상적인 경제활동 재개 사이에서 고심하고 있는 상황 보다 앞서있다.
5월 27일 현재 아세안 10개국의 감염자 수는 83,266명, 사망자 수는 2,580명이다. 총 인구 6억 7천만 명의 아세안 국가들 간 보건 의료 수준의 격차가 존재하지만, 아세안 국가들은 각자의 상황에서 모든 역량을 전염병 대응에 투입하고 있고, 그것이 비교적 좋은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이번 전염병 확산은 국제 경제․정치적으로도 근본적 변화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자국중심주의가 더욱 거세질 수도 있고, 혹은 경제 활성화를 위한 자유무역체제의 복권이 촉진될 수도 있다. 신냉전 양상을 보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세계경제 치유를 위해 화해와 협력의 길로 들어설지도 주목된다. 이 변화의 양상은 향후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추이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4월에 열린 아세안과 한중일 정상간 특별 화상회의에서는 보건 의료분야에서의 협력 방안을 도출하고 동아시아 경제의 빠른 회복을 위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3국 중 코로나에 가장 잘 대응한 한국은 아세안+3 협력의 기여자이자 촉진자로서의 존재감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또한 한국은 정부와 기업에서 진단키트, 방호복 등 현물과 현금 지원을 통해 아세안 국가들의 코로나와의 전쟁에 동참하고 있다. 한국의 기민하고 조직적인 대응능력은 제조품과 한류로 형성된 한국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더욱 큰 영역으로 확대하였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한국을 총체적 선진국으로 인식하는 아세안 국민들이 늘어날 것이며, 그 파급 효과는 많은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것이다.
코로나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현 시점에서 한-아세안간 직접적인 교류는 당분간 단절된 상태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편으론 양측의 우호협력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귀중한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무엇보다 코로나를 통해 최고의 보건의료 수준을 증명한 한국이 아세안 국가들에게 최선의 도움을 주는 것이 우선이다.
어려울 때 도움을 주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이다. 아니, 아세안이 코로나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국과 아세안 간의 협력과 교류의 맥박이 다시 힘차게 뛰고, 이것은 특히 무역의존도가 GDP의 66%를 점하는 한국의 국익 증대로 귀결될 것이다. 한-아세안은 함께 고통 받고, 함께 일어서고, 함께 번영하는 동반자가 된 것이다.
한국과 아세안 간 협력의 영역도 확대될 잠재력이 커졌다. 필자가 2년전 까지 필리핀과 베트남에서 대사로 근무한 당시에는 이 국가들이 보건의료 분야에서 한국의 진출을 받아들이는데 소극적이었다. 이번 사태로 급격한 변화가 이뤄지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의료보건 진출을 위해 정부와 민간이 합심하여 꾸준히 노력한다면 결실을 맺을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본다.
코로나라는 전염병으로 온 세계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참화의 늪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한-아세안 국민과 기업과 정부 간에 우호협력의 기운이 서로에게 ‘전염’되어 코로나 후 빠른 협력과 교류의 회복이 촉진될 수 있도록 한국이 앞장서는 게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이다.